예수회 성소실

HOME > 성소 > 평수사

제 31차 총회는 예수회에 있어서 성소의 단일성을 언급했다. 당시 예수회 총장이셨던 아루뻬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소의 단일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매우 심오하면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동등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회헌에 응답하는 '초자연적인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덧붙이기를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은총에 따라서 우리는 예수회에서 단 하나의 성소, 즉 하나의 사도적 성소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제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사제적 조직체를 통하여 일을 합니다. 평수사이든 사제이든, 자기의 성소에 충실하면 그는 거룩해질 것입니다. 가치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질 만한 것은 자비(慈悲), 하느님과의 일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것입니다."

"예수회가 1540년 이래 '사제들의 조직체' '성직 수도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들 사이에서는 때때로 침묵의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너무 크게 주장함으로써 우리가 평수사들의 현존의 의미와 그들의 일을 축소하면서 그들을 마음 상하게 하거나 위축시키지는 않습니까? 교회가 법적으로 우리 예수회를 승인한 후 거의 6년 후에 성 이냐시오는 획일화된(monolithic) 조직체를 지배하는 법에 완전히 반대하여 현실 속에서 존재하는 불평등과 그 것이 만들어 내는 긴장들을 성소와 사명의 단일성(單一性) 속에서 통합합니다. 한 사람의 마음 속으로 사제성소의 원의를 불어 넣은 것과 또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평수사 성소의 원의를 불어 넣는 것은 다름아닌 성령(聖靈)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창립자는 종합적인 사도직 조직체를 설립합니다. 그 속에서 각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령의 사적인 부르심을 존경하면서 하나의 유일한 사도적 성소에 참여하며 또 그 사도적 성소에 기여합니다.

회헌에서 성 이냐시오는 예수회의 조직체를 단일성(unity)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일치(union)라고 하시는데, 이 일치는 항상 발전되어야 하며 큰 관심으로 추구되어야 하는 일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 이냐시오는 이 일치에 대해서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자비의 끈으로 일치된 다양성(多樣性)은 그들 각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그들 사이에서든지 또는 그들과 이웃사람들 사이에서든지 불화와 논쟁을 낳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일치는 무엇보다도 우리 힘만으로 이행할 성질의 것이 아니고 우리가 성령께로부터 받을 선물입니다. 세례적 사제직(baptismal priesthood)과 축성된 사제직(consecrated priesthood)사이의 다양성이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서든지 예수회 내에서든지 야기되는 분열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얼마만큼 각자가 위에서 말씀드린 믿음의 안목(vision)을 가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성사적 조직에서 없어야 되는 차별과 모든 차등 - 지나치게 세속적인 사제직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모든 형태의 반박 뿐만 아니라 예수회 내의 모든 형태의 성직자 주의(聖職者主義) - 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위에서 언급한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 수련기
    수련기는 연학수사의 수련과 평수사의 수련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연학수사 수련기나 평수사 수련기의 특별한 양상에 따라 거기에 맞는 특별한 방법을 조성시키기만 하면 될 것이다. 연학수사들의 수련장과 평수사들의 수련장이 동일 인물이거나 다르거나 상관없이 양자에게 통일된 양상이 베풀어 지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제 31차 총회 교령 8)

  • 수련기 이후
    1) 예수회 제 31차, 32차 총회 문헌

    - 수도회의 쇄신 적용은 회원의 양성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므로 성직자가 아닌 남녀 수도자들을 수련기가 끝나자 마자 곧 사도직의 일에 종사케 하지 말 것이다. (수도 생활에 관한 교회 문헌, 서론 18항)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연학수사와 평수사를 수련기 후에 곧바로 분리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더 좋은 것처럼 보인다. (총장님 서한 88/17)

    - 보다 견고한 양성생활의 기반이 요구되는 현대세계의 실정에 비추어 당초부터 연학수사와 평수사는 성서와 전례에서 예수성심께 대한 본회의 전통적 신심에서 그리고 교회론과 기타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현의(玄義)에 대한 보다 깊은 지식을 계속하여 점진적으로 함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도 항상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동시에 함양되고 견고해져야 된다는 궁극 목적하에 실시되어야 한다.(제 31차 총회 교령 8, 9항)

    - 현대 세계에서의 예수회의 사명을 규명한 제 32차 총회의 근본결의는 회원 양성에 있어서 사도적 부면에 노력을 새로이 경주하도록 촉구하며, 이는 제 31차 총회가 이미 확언한 바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연학수사든 평수사든 회원들의 양성 전체는 무신론(無神論)과 불의(不義)가 횡행하는 세계를 복음화(福音化)하는데 요구되는 제반 사항에 대응하는 것이라야 한다. (제 32차 총회 교령 6, 5항)

    - 제 31차 총회 교령 7항 및 8항에 의거하여 본회의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는 평수사들로도 하느님께 부여받은 자질과 재능에 따라 적합한 신학 교육과 특수 양성을 받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제 32차 총회 교령 6, 23항)

    - 양성을 담당하는 회원들은 연학수사나 평수사를 막론하고, 교회와 예수회의 영성의 원천 및 본회의 역사와 전통에 친숙해지도록 배려할 것이며, 특히 수련기 직후부터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의 향상 발전을 위해서 이것들을 연구하도로 촉구하여야 한다. (제 32차 총회 교령 6, 33항)

    - 본회의 전통과 사도직 생활에 있어서 철학연구와 신학연구의 중요성은 막대한 것이다. 따라서 관구장들은 가능한 대로 모든 회원이 신학 또는 철학의 학위를 취득하도록 주선할 것이며, 더 고차적인 연구에 흥미를 갖고 재능을 보이는 회원에게는 그 연구에 종사할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특수 연학에 관해 규정한 제 31차 총회 교령 9의 30 - 44항들도 실시되도록 하여야 한다. (제 32차 총회 교령 6, 38항)

    - 평수사들의 연학은 관구의 인재수급 (人材需給), 본인들이 재능과 취미, 장차 종사할 사도직에 적응토록 배정되어야 한다. 평수사들의 종교적 연학은 당사자의 적성에 준하고 그들이 받았고 또 받고 있는 다른 교육들과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제 32차 총회 교령 6, 40항)

    2) 베드로 아루뻬 신부님의 강론 (News and Features - 1976. 12.)

    아루뻬 신부님께서 예수회의 젊은 평수사들의 양성과 교육에 관한 질문을 받고서 에수회의 기본적인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제성소를 가진 한 젊은이나 학생이 예수회에 왔을 때, 예수회는 그가 가장 훌륭하고 가능한 방법으로 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사제로 만들기 위하여 그 젊은이의 전 인격을 가능한 데까지 개발시키기를 원합니다. 그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일에 종사할 것입니다. 신학교수가 되는 것, 선교사로서 애써 일하는 것, 노동자의 일을 하는 것, 주방에서 돕거나 자동차를 청소하는 것과 같은 비천한 일을 하는 것..." 그는 강조하기를 "모든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위대함과 작음의 어떠한 문제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입니다."라고 말씀하시고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원칙을 평수사의 생활과 일에도 확대했습니다. "위와 똑같이, 사제성소를 가지고 있지 않으나 평수사 성소로 부르심을 받은 젊은이가 예수회에 들어 왔을 때, 예수회는 항상 - 무엇보다 오늘날 - 그의 인격적 소질을 최대한도로 까지 개발시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젊은이가 예수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최대한도의 가능한 봉사를 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 입니다."

    3) 예수회 연학의 일반 규범 (General norms for jesuit studies)

    평수사들이 힘있게 교회에 봉사하고 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돈독히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들에게 처음부터 견고한 수도생활(修道生活)에 관한 양성과 신학적 양성이 베풀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신학교육은 각자의 재능과 취미 그리고 그들에게 위임된 일의 요구에 따라서 끊임없이 채워져야 한다.

    4) 콜벤바흐 총장 신부님 서한 (88/17)

    "수련기 후에 평수사들이 그들의 지적인 양성을 수행해야할 단계는 세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폭넓은 교양적인 것을 공부할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교양연학 과정(Juniorate)이 있는 어떤 관구들에서는 그 관구가 제공하는 교양교육이 연학수사들에게와 똑같이 평수사들에게도 또한 제공될 수 있습니다. 평수사들에게 제공되는 과정의 프로그램에 있어서 조절될 수 있는 어떤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좀더 전문적인 교육기간이 있는데 이것은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입니다. 이 기간은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관구의 특별한 필요성의 관점에서 다소간 늘어지거나 줄어들 수 있고 좀더 많이 강조될 수도 있고 좀더 적게 강조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학적인 교육(성서교육, 교리교육, 사목교육)의 기간이 있습니다. 평수사의 영적인 경험, 그리고 수도생활의 경험과 연결된 이러한 신학적 교육은 우리 예수회의 신학교에서나 혹은 수도자 양성에 적합한 기관에서 행해지도록 할 수 있습니다. 각 관구는 양성중인 평수사들을 위해서 응당 치러져야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여 제공해야 합니다. 또한 중간 실습기(regency)와 제 3수련이 그 양성 기간 이내에 알맞는 때에 행해질 것입니다.

  • 평수사의 활동과 일 (News and Features - 1976. 12.)
    앞의 총회 문헌에서 평수사의 활동에 대해서 일부가 언급되었다. 다음은 아루뻬 신부님께서 평수사의 활동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다. "오늘날 예수회는 꼭 사제직에 의존해야만 하는 일 빼고는 평수사들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했고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그는 미사를 드릴 수 없고 고백성사를 들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이외에 다른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평수사는 어떠한 일을 하도록 준비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시고 신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모릅니다. 그는 요리사가 될 수 있고, 접수계원이 될 수 있고, 대학교의 부총장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 중에 어느 것이 더 위대하고 어느 것이 저속합니까? 위대함과 저속함은 인간의 척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회에서 사제들의 경험에서 유사한 것을 지적하심으로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오늘, 사제는 관구장 또는 총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그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많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했던 것처럼 가난한 본당에서 일하기 위해 고립된 지역에 갈 수도 있습니다. 왜?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똑같은 기준이 평수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 자체로서의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안정과 평온함,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지요."